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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성도

세상이 크리스천을 불편해하는 이유 - '사랑' 편

문득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세상이 성경이 말하는 사랑을 실천하려고 몸부림치는 진짜 크리스천에게 미움까지는 아니더라도 어느정도 불편함을 가질 수 밖에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 사랑에 대한 이해도가 다르다. 세상은 사랑은 나를 이해해주고 받아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느정도 맞는 말이다. 진실로 하나님만이 나를 온전히 이해해주실 수 있고 받아주실 수 있다. 그러나 그 외 누구도 이 역할을 대신 해줄 수 없다. 이것을 인정해야 신앙의 여정의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는 것 같다. 이것이 인간관계에서 상처를 받더라도 우리가 누군가를 용서할 수 있는 이유가 된다. 이것이 상대방이 완벽하지 않고 어딘가 부족해보일지라도 참고 사랑하고 결혼이라는 선택을 할 수 있는 이유가 된다.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를 받아주시기만 하는 사랑이 아니라 '우리를 변화시키는' 사랑이다. 하나님께서는 내 모습 이대로 사랑하시지만 결코 그 모습 그대로 머무르라고 말씀하지 않으신다. 수련회에서 들은 우리 교회 청년부 목사님의 창작 이야기가 인상적이라 같이 첨언한다. (혹시라도 수련회에서든 어디서든 설교 때 예화로 써주시진 마시고 만약 하시고 싶으시면 디테일한 내용을 절반 이상 바꿔서 하시는 게 좋을 것 같다. 책으로 출간한 이야기는 아니라 저작권은 없을 수도 있겠지만 만약 없더라도 내가 올리는 이상 생기는 거나 다름이 없기 때문에...) ------------------------------------------------------------------------- 옛날 푸세식 화장실이 더 많았던 시절 주인공이 볼일을 본 후에 다리에 쥐가 심하게 나서 몸을 가누지 못하다가 결국에는 똥통에 빠졌다. 이 경우 살아날 수 있는 확률은 거의 제로. 살려달라고 외치며 발버둥 칠수록 몸은 점점 통똥에 잠기고, 입과 코, 귀, 눈 ... 주인공의 몸에 점점 그 똥들이 들어온다. 구더기가 몸을 기어가는게 보이고 느껴진다. 파리 또한 가득해서 몇몇은 입과 코, 귀 안에 들어간 것 같다. 그 모든 좋지 않은 상황은 천천히 그리고 빠르게 주인공을 죽음에 이르게 한다. 그런데 딱 죽기 직전 깨끗하고 거룩한 손으로 온갖 더러운 것들로 더러워진 주인공을 구해준 사람 A가 있었다. 심지어 주인공 대신 똥통에 빠져 죽었다. 이 죽음은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에는 못 미치지만 예수님이 말씀하신 친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사랑이었다. 12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13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 14 너희는 내가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15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라 (요한복음 15:12~15) 이후 주인공 대신 죽은 A의 친구 B가 와서 자신의 친구 A대신 살아난 주인공을 질책하지 않고 오히려 괜찮냐고, 놀라지 않았냐고 말하며 얼른 가서 씻으라고 말하고 떠난다. 그런데 갑자기 주인공은 기억을 잃었다. 뭔가 큰 충격을 받아서 그런 듯 하다. 정신을 차리니 시간이 꽤 지난 듯 하다. 목이 너무 마르고 배가 너무 고파서 씻어야 한다는 것도 잊고 바로 물을 마시고 음식부터 먹는다. 그런데 맛이 이상하다. 그제서야 기억이 난다. 기절하기 전에 있었던 모든 이야기가, 어서 가서 씻으라는 B의 말이. 그리고 나서 입 안을 깨끗하게 비우고 양치하고 입 주변만 닦았다. 왜 씻을 때 다 안 씻었느냐고? 먹을 거랑 마실 것을 마시는 게 급했으니까. 그것만 해도 먹고 마시는 데에는 지장이 없었기 때문이다. 주인공의 삶은 그렇게 또 살다가 또 잊다가 또 기억나서 몸의 일부만 씻다가 하는 것의 반복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그 다음에는 손을 씻었다. 맨손으로 과일 같은 것을 먹을 수 없어 불편했기 때문이다. 그 다음에는 발을 씻었다. 걸을 때마다 불편했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몸을 조금씩 씻기 시작한다. 이걸 다 죽다 살아난 주인공의 생각으로 했냐고? 아니? 그럴리가. 주인공을 대신해 죽은 A의 친구 B가 매일같이 주인공을 찾아와 주인공의 안부를 걱정해주고 주인공이 미처 씻지 못한 부분이 남아있다는 것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계속 말해주었다. 주인공은 반복적으로 그 말을 듣고, 또 잊고 살다가 삶의 불편함이 생길 때 그들의 말이 이해가 되어 씻는다. 그리고 주인공은 마침내 죽었다. 어떤 죽음이든 과거에 똥통에 빠져 죽는 것보다는 훨씬 나았으리라 생각하면서 말이다. 똥도 미처 다 못 닦은 것 같다. 죽기 직전까지도 다 못 닦다니 주인공도 참 바보다. 주인공에게는 자신을 구해주고 대신 죽은 A처럼 누군가를 대신해 죽을 용기는 없었지만 자신처럼 더러운 똥통에 빠져 죽어가는 사람을 살리려고 부단히 노력했고 그렇게 살아왔다. 물론 그 과정에서 숱하게 들어온 이야기들이 있다. 다른 사람을 생각하고 구하기 전에 네 몸의 똥이나 닦으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어찌 그럴 수 있을까? 주인공이 그런 상황에서 죽다가 살아났는데, 똥통에 빠져서 죽어가는 사람이 있는데 어찌 자신의 몸부터 닦을 수 있단 말인가? 아무튼 주인공은 그런 말들을 무시하고 남은 여생을 똥통에 빠진 다른 사람을 구하고 또 매일같이 주인공을 찾아오는 B의 말을 들으며 자신의 몸을 씻으며 보냈다. 그렇게 살다가 죽었다. 호상이었다. 이제 이 사람에게는 어떤 삶이 기다릴까? 성경에서 말하는 하나님 나라에 갔을까? 그 답은 글을 읽는 여러분이 알고 있을 것이다. 다만 의도적으로 주인공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주님으로 믿는 참된 믿음(신앙)이 있는지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이것은 글을 읽는 여러분의 상상에 맡기도록 하겠다. ------------------------------------------------------------------------- 이야기를 보며 무언가 느끼는 바가 있는가? 그리 좋은 스토리는 아닌 것 같다. 뭔가 감동적인 것 같은데 굳이 그런 더러운 상황을 가정해야 했을까라는 생각이 들지는 않는가? 나는 성경이 말하는 복음은 이까짓 작은 이야기보다 더욱 파급적이고 더욱 충격적인 내용이 많이 담긴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성경은 아는만큼 새롭게 보이는 책이다. 과거에 어렴풋이 알았던 내용들이 보강되어 내 머리 속에 들어온다. 지금까지 잘못 알고 있있던 내용이 수정되어 내 머리 속이 들어온다. 때로는 듣도 보도 못한 몰랐던 내용이 새롭게 내 머리 속에 들어온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결혼은 성경에서 언약이다. 모세 역시 사람이기에 사람의 완악함을 알았고 상대방이 간음했을 때만 가정을 지키기 위한 방편으로 이혼을 허락했지만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하나되게 하신 것을 어찌 사람이 끊을 수 있겠냐며 대답하셨다. 3 바리새인들이 예수께 나아와 그를 시험하여 이르되 사람이 어떤 이유가 있으면 그 아내를 버리는 것이 옳으니이까 4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사람을 지으신 이가 본래 그들을 남자와 여자로 지으시고 5 말씀하시기를 그러므로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서 아내에게 합하여 그 둘이 한 몸이 될지니라 하신 것을 읽지 못하였느냐 6 그런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 하시니 7 여짜오되 그러면 어찌하여 모세는 이혼 증서를 주어서 버리라 명하였나이까 8 예수께서 이르시되 모세가 너희 마음의 완악함 때문에 아내 버림을 허락하였거니와 본래는 그렇지 아니하니라 9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누구든지 음행한 이유 외에 아내를 버리고 다른 데 장가 드는 자는 간음함이니라 10 제자들이 이르되 만일 사람이 아내에게 이같이 할진대 장가 들지 않는 것이 좋겠나이다 (마태복음 19:1~10) 2 바리새인들이 예수께 나아와 그를 시험하여 묻되 사람이 아내를 버리는 것이 옳으니이까 3 대답하여 이르시되 모세가 어떻게 너희에게 명하였느냐 4 이르되 모세는 이혼 증서를 써주어 버리기를 허락하였나이다 5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 마음이 완악함으로 말미암아 이 명령을 기록하였거니와 6 창조 때로부터 사람을 남자와 여자로 지으셨으니 7 이러므로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서 8 그 둘이 한 몸이 될지니라 이러한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9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 하시더라 10 집에서 제자들이 다시 이 일을 물으니 11 이르시되 누구든지 그 아내를 버리고 다른 데에 장가 드는 자는 본처에게 간음을 행함이요 12 또 아내가 남편을 버리고 다른 데로 시집 가면 간음을 행함이니라 (마가복음 10:2~12) 세상의 이혼 사유는 다양하다. 어쩌면 세상의 사랑은 다음에서 다룰 내용이 패시브로 깔려있기 때문이다. 두 번째, 세상의 사랑은 계산적인 모습이 패시브이다. 대부분의 사람은 돈이 아니라 사랑조차 빚을 지는 것에 민감하다. 계산적인 사랑을 하기 때문에 그렇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조건 없는 사랑이 불편하다. 양심이 무뎌진 누군가는 개꿀 ㅋㅋㅋㅋㅋㅋ 이러며 상대방의 호의를 악용할 수도 있지만 양심이 아직 살아있는 누군가는 불편함이 생길 가능성이 높다. 크리스천들은 그것을 이상하게 여기지 말라 우리도 과거에는 (어쩌면 지금도?) 그랬다. 주님, 내가 무엇이기에 자신을 버리셨습니까? 이제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이런 생각이 계속 든다면 성경을 읽어라.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 읽어라. 삶이 바쁜 거 알지만 중간중간 쉬는 시간도 있고 아니면 하루 일정이 다 끝난다음, 아니면 하루를 시작하기 전도 있으니 짬짬히 시간을 내어 성경을 읽어라. (최소 한 번 읽을 때 2~3분 이상!) 그리고 말씀 안에서 당신의 비전을 찾으라.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은 말씀과는 전혀 딴판인 것처럼 보일 때가 있을 수 있다. 괴리감이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럼에도 성경이 진리임에는 변함이 없다. 무엇이든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최종 선택의 기준이 되도록 매일 의식하고 또 의식하라. https://youtu.be/vfmP5KKiCYw?si=wsfxkf4Nf5TVHff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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