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가나안 성도의 애통한 간증.
안녕하세요. 일단 저는 가나안 성도입니다.
그리고 제가 느낀 가나안 성도가 된 배경과 교회에서 느끼는 가나안 성도들의 모습이라고 생각이 돼요.
일단 이 글을 읽으시는 여러분, 가나안 성도가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믿음이 약해서…? 아니면 사람들의 갈등으로 인해 발생된 성도…?
저는 둘 다라고 생각하지만, 그중에서 후자가 많다고 봐요.
왜 그런지 설명할게요.
첫 번째. 교회 내에서 영적인 갈급함이 채워지지 않습니다.
[시편 42:1-2]
1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나이다
2 내 영혼이 하나님 곧 살아 계시는 하나님을 갈망하나니 내가 어느 때에 나아가서 하나님의 얼굴을 뵈올까
가나안 성도들은 대부분 이런 상태예요.
그런데 예수님의 몸 된 교회라고 자부하는 그들 속에 끼어 있으면,
설교가 말씀 해석보다 행사·정치·도덕 이야기로 채워져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을 깊이 질문하거나 토론할 기회가 거의 교회 내에서 없어요.
그러다 보니 본질보다 교회 내부 문화나 친목이 우선시됩니다.
두 번째 이유. 질문과 토론에 대한 거부감을 느끼는 교회입니다.
[골로새서 3:16-17]
16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17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
성경에 대한 질문을 하면 셀모임에서는 불편한 감정을 느끼고,
질문한 사람에게 ‘불편한 사람’이라는 낙인이 찍히죠.
심지어 목사님에게 가서 불편하다고 중재를 요청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꼭 나중에는 이렇게 회피합니다.
“그거 목사님에게 물어보는 게…”
결국 열린 대화가 닫혀 버립니다.
세 번째. 교회 내 갈등과 권위주의.
[요한계시록 3:14-17]
14 라오디게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아멘이시요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요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신 이가 이르시되
15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16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버리리라
17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가나안 성도들은 대부분 성경 이야기를 하고 싶어합니다.
즉, 주체인 교회가 하나님 말씀을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죠.
있더라도 그날 주어진 설교 내용 위주로만 흘러갑니다.
제가 느끼기엔 성도들은 형식과 틀 안에 갇혀 있어서
그 안에만 머물려고 하는 것 같습니다.
가나안 성도들은 자유롭게 성경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
성경 이야기를 하면 돌아오는 말은 이렇습니다.
“네가 목사야?”
“분위기 깨지 마.”
“분위기 파악 좀 해.”
직분, 나이, 오래 다닌 순서에 따른 위계문화.
‘목사 말이 곧 법’처럼 작동하는 구조의 교회 시스템 때문입니다.
네 번째. 개인 상황 변화
교회를 가고 싶지만 어쩔 수 없이 못 가는 상황도 있습니다.
혹시 이 글을 보시는 분,
저의 의견에 동의하십니까?
그렇다면 교회는 어떻게 해야 될까요?
알고 있는데도 안 고치는 걸까요, 아니면…
정말로 가나안 성도들의 상태를 모르는 걸까요?
공감 3댓글 23조회 69
댓글과 공감 보기
글쓴이가 검색 공개를 고른 요즘처치 게시글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