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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성도

하나님의 시선이 멈추었던 사람들

역대상 4장 9.야베스는 그의 형제보다 귀중한 자라 그의 어머니가 이름하여 이르되 야베스라 하였으니 이는 내가 수고로이 낳았다 함이었더라 10.야베스가 이스라엘 하나님께 아뢰어 이르되 주께서 내게 복을 주시려거든 나의 지역을 넓히시고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나로 환난을 벗어나 내게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 하였더니 하나님이 그가 구하는 것을 허락하셨더라 역대상을 묵상해보면 아담부터 시작된 족보들이 쭉 이어진다. 길다면 길고, 지루하다면 지루한 족보가 쭉 이어지다가 잠시 족보가 멈추어진 부분이 바로 오늘 본문 말씀이다. 하나님은 왜 이 짧은 야베스의 이야기를 족보와 족보 사이에 넣어놓으셨을까? 이 본문 후에는 또 다시 족보가 이어지다가, 다시 한번 족보가 멈추어진 부분이 있다. 역대상 5장 19.그들이 하갈 사람과 여두르와 나비스와 노답과 싸우는 중에 20.도우심을 입었으므로 하갈 사람과 그들과 함께 있는 자들이 다 그들의 손에 패하였으니 이는 그들이 싸울 때에 하나님께 의뢰하고 부르짖으므로 하나님이 그들에게 응답하셨음이라 르우벤, 갓, 므낫세 지파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그러고보니 굉장히 오버랩되는 부분이 또 있다. 창세기 5장 24.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 창세기 5장도 마찬가지로 쭉 족보가 이어지다가 에녹의 이야기에서 잠시 족보가 멈추어진다. 족보는 역사의 흐름이다. 역사가 속절없이 흘러가는 그 시간 속에서 하나님의 마음과 시선이 멈추는 순간이 있다. 그 순간이 바로 에녹의 ‘동행함’이었고, 야베스의 ‘아룀’이었으며, 므낫세 지파의 ‘의뢰함’인 것이다. 하나님께서 좋아하는 태도의 집합체가 아닐까? 동행한다는 것은 원어로 하나님과 함께 걷는다는 것. 아뢴다는 것은 원어로 하나님을 삶에 초대한다는 것. 의뢰함이라는 것은 원어로 희망을 걸어본다는 것. 사실 이 세 단어는 모두 동일하다. 하나님을 삶에 초대하고, 하나님께 자신의 희망을 걸어버리며, 하나님께 부르짖는 이 삶이 바로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이기 때문이다. 바로 이러한 사람이 수많은 사람과 사건들이 얽혀 흘러지나가는 역사 속에서도 하나님의 마음에 주목이 되는 사람이다. 나는 어떨까. 이 역사의 거대한 흐름 속에서 그저 흘러 지나가는 마음인가, 아니면 하나님의 마음에 기쁨이 되는 마음인가. 내 삶의 모든 순간들이 하나님의 마음에 감동이 되기를. 이 악한 세상에서 그 어떤 곳에도 마음 둘곳 없으셨지만, 나를 생각하실 때는 잔잔한 미소를 지으시기를, 나를 보시면서 마음이 평안해지시기를, 정말 그런 삶이 되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모든 주권이 하나님께! 주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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