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2.27 매일성경
+ 저는 신학을 전공하지 않은 예장합동 소속
교회를 다니는 청년이기 때문에 성경적&교리적&
신학적 오류가 있을 경우 댓글로 남겨주세요~!
묵상 나눔
본문: 요한복음 8:31~41
제목: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31 그러므로 예수께서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으로 내 제자가 되고
32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33 그들이 대답하되 우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남의 종이 된 적이 없거늘 어찌하여
우리가 자유롭게 되리라 하느냐
34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
35 종은 영원히 집에 거하지 못하되 아들은
영원히 거하나니
36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로우리라
37 나도 너희가 아브라함의 자손인 줄 아노라
그러나 내 말이 너희 안에 있을 곳이 없으므로
나를 죽이려 하는도다
38 나는 내 아버지에게서 본 것을 말하고
너희는 너희 아비에게서 들은 것을 행하느니라
39 대답하여 이르되 우리 아버지는 아브라함이라
하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면 아브라함이 행한 일들을 할 것이거늘
40 지금 하나님께 들은 진리를 너희에게 말한
사람인 나를 죽이려 하는도다 아브라함은 이렇게
하지 아니하였느니라
41 너희는 너희 아비가 행한 일들을 하는도다
대답하되 우리가 음란한 데서 나지 아니하였고
아버지는 한 분뿐이시니 곧 하나님이시로다
예수님은 앞서 자신의 말을 진리로 믿은
이들에게 진리 안에 거하면 참된 자유를
얻게 됨을 알려주신다. 그러나 결국
표면적인 육신의 혈통이 이제 막 생겨나기
시작한 그들의 믿음과 충돌하게 된다.
먼저 예수님은 자신의 말에 거할 때 참된
예수님의 제자가 된다고 말한다.
교회를 열심히 나가면 제자가 되는 게 아니고
봉사나 섬김을 열심히 한다고 제자가 되는 게
아니고 교회에서 주요 직분을 감당해야 제자가
되는 게 아니다. 물론 참된 제자라면 이와 같은
하나님께 내가 어떤 것을 더 해드릴 수 있을까
라는 신앙적인 열심이 생겨나는 게 자연스럽지만
그 반대는 아닐수도 있다. (성경에는 이처럼
집합의 포함관계로 이해하면 좋을 말씀이 많다.)
7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하나님을 알고
8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요한일서 4:7~8)
요한일서는 하나님으로부터 난 자라면 사랑한다고
말하지만 그렇다고 사랑하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이
모두 하나님께 난 자다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세상에도 어떤 종류의 사랑은 있기 때문이다.
15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16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17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18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19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느니라
20 이러므로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마태복음 7:15~20)
마태복음은 좋은 나무(거듭난 사람)라면
아름다운 열매가 나온다고 말하지만 그러나
겉으로 보기엔 그럴듯한 열매처럼 보이는
모든 것이 다 좋은 나무에서 난 것이라고
단정하진 않는다. 오히려 거짓 선지자들도
겉으로는 양의 옷을 입고 온다고 경고한다.
참된 제자라면 반드시 열매가 있지만, 모든
열심과 성공과 활동이 곧 참된 제자 됨을
보증하지는 않는다.
15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요한복음 14:15)
요한복음은 예수님을 사랑한다면 계명을 지키는
삶(순종)이 나타난다고 말하지만 어떤 사람이
도덕적으로 외형적인 계명 몇 가지를 잘 지킨다고
해서, 반드시 그가 예수를 사랑한다라고 단정하지
않는다. 바리새인들이 대표적인 예이다. 그들은
겉으로는 율법을 철저히 지켰지만 예수님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라 부르며
책망하셨다. 즉 ‘사랑 -> 순종’은 자연스럽지만,
‘어떤 형태의 순종 -> 사랑’은 아닐 수 있다.
14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15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16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덥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17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18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너는 믿음이 있고 나는
행함이 있으니 행함이 없는 네 믿음을 내게
보이라 나는 행함으로 내 믿음을 네게 보이리라
하리라
19 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을 믿느냐
잘하는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
(야고보서 2:14~19)
야고보서는 살아 있는 참된 믿음이라면 반드시
행함이 뒤따른다고 말하지만 반대로 어떤 종류의
행함이 있다고 해서 반드시 참 믿음이다라고는
하지 않는다. 단순한 지식이나 어떤 행동만으로는
참된 믿음을 보증하지 못한다. 참 믿음이라면
행위가 나오는 것은 필연이지만, 행위 그 자체가
곧 참 믿음을 보증하는 절대적 표지는 아니다.
이런 면에서 기독교가 행위 구원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이다. 행위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라 행위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성경은 자주 내면의 진짜 상태 (거듭남,
사랑, 믿음, 참 제자 됨, ...) -> 외적인 열매와
열심의 방향은 강하게 말하면서도, 그 역방향은
매우 조심스럽게 다룬다. 참된 제자라면 갈망과
열심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온다. 그러나 단지
열심이나 활동만으로, 또 스스로의 기준으로
나는 참된 제자라고 안심하면 안 된다. 항상
우리 마음의 중심이 복음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래서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을 얼마나
하고 있느냐보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말씀이
말하는 예수님은 어떤 분이신가? 나는 그분을
사랑하고 있는가? 나는 팬인가 제자인가?
라는 근본적인 뿌리의 질문에 계속 서는 것이다.
제자도는 결국 말씀 안에 거함에서 나온다.
4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6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려져 마르나니 사람들이 그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
7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8 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는 내 제자가 되리라
9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
10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11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12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요한복음 15:4~12)
우리 안에 말씀을 사랑하는 마음이, 예수님과의
지속적이고 실제적인 관계가 없다면 우리는
하나님이 보시기에 그저 자기의 만족과 유익을
위해 하나님을 따르는 허다한 무리들(Fan)이고
이는 언제든 돌아설 수 있는 불안한 관계이다.
Fan의 특징은 말은 그럴싸하게 하지만 실제
삶에서는 이것저것 핑계를 대며 그 말대로
살아가려하지 않는다. 차라리 말이라도 그렇게
안 했으면 모를까 말은 또 잘 한다.
57 길 가실 때에 어떤 사람이 여짜오되 어디로
가시든지 나는 따르리이다
58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집이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도다
하시고
59 또 다른 사람에게 나를 따르라 하시니 그가
이르되 나로 먼저 가서 내 아버지를 장사하게
허락하옵소서
60 이르시되 죽은 자들로 자기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가서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라 하시고
61 또 다른 사람이 이르되 주여 내가 주를
따르겠나이다마는 나로 먼저 내 가족을
작별하게 허락하소서
62 예수께서 이르시되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하시니라
(누가복음 9:57~62)
우리가 평소에 찬양으로 쉽게 고백하는 그 삶이
우리의 실제가 되도록, 하나님을 위해 살겠다고
하나님 만이 나의 소망이라고 고백했지만 막상
삶에서는 나를 위해 살아가고 다른 것을 소망으로
삼는 고집불통이 되지 않도록 삶을 돌아보자.
하나님은 잘 기억도 안 나는 우리의 그 고백을
기억하고 계시며 가장 중요한 때에 우리에게
찾아와 물으신다. ~~야. 지금이 바로 그때야.
너의 그때 그 고백이 너의 삶으로, 행동으로
증명될 수 있는 타이밍이야. 그러니 너가 찬양의
고백대로 믿음을 지키며 살아갔으면 좋겠다.
적어도 회중은 가사에 동의가 되지 않으면
고백을 안 할 수라도 있지 찬양팀 등은
그렇지 않으므로 특히 목소리로 악기로
율동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사람들은
더 자신을 돌아봐야 할 필요가 있다. 그들은
이 시대의 레위인들이다. 다른 지파와
비교하지 말라. 말씀으로 늘 깨어있고
자신의 책무를 다하라. 그럴 자신이 없다면
아무리 노래 실력, 악기 실력, 춤 실력이
아무리 좋아도 섬김을 내려놓는 것이 좋다.
12 노래하는 레위 사람 아삽과 헤만과 여두둔과
그의 아들들과 형제들이 다 세마포를 입고 제단
동쪽에 서서 제금과 비파와 수금을 잡고 또 나팔
부는 제사장 백이십 명이 함께 서 있다가
13 나팔 부는 자와 노래하는 자들이 일제히
소리를 내어 여호와를 찬송하며 감사하는데
나팔 불고 제금 치고 모든 악기를 울리며 소리를
높여 여호와를 찬송하여 이르되 선하시도다
그의 자비하심이 영원히 있도다 하매 그 때에
여호와의 전에 구름이 가득한지라
14 제사장들이 그 구름으로 말미암아 능히
서서 섬기지 못하였으니 이는 여호와의 영광이
하나님의 전에 가득함이었더라
(역대하 5:12~14)
찬양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실력이나 관계가
아니라 영성이다. 하나님의 영광에 압도되어지는
경험이 쌓이고 쌓여 영성이 충만하면 실력과
관계는 매우 자연스럽게 따라오게 되어있다.
3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면 이로써 우리가
그를 아는 줄로 알 것이요
4 그를 아노라 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지
아니하는 자는 거짓말하는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있지 아니하되
5 누구든지 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하나님의
사랑이 참으로 그 속에서 온전하게 되었나니
이로써 우리가 그의 안에 있는 줄을 아노라
6 그의 안에 산다고 하는 자는 그가 행하시는
대로 자기도 행할지니라
(요한일서 2:3~6)
66 그 때부터 그의 제자 중에서 많은 사람이
떠나가고 다시 그와 함께 다니지 아니하더라
67 예수께서 열두 제자에게 이르시되 너희도
가려느냐
68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되 주여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이까
69 우리가 주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이신 줄
믿고 알았사옵나이다
(요한복음 6:66~69)
하나님은 성회와 어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견디지 못하시는 분이시다. 우리의 예배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예배인가? 아니면
우리가 원하고 우리에게 편한 예배인가?
11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나는 숫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에 배불렀고 나는
수송아지나 어린 양이나 숫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
12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이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냐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
13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분향은 내가
가증히 여기는 바요 월삭과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그러하니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
14 내 마음이 너희의 월삭과 정한 절기를
싫어하나니 그것이 내게 무거운 짐이라 내가
지기에 곤비하였느니라
15 너희가 손을 펼 때에 내가 내 눈을 너희에게서
가리고 너희가 많이 기도할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니 이는 너희의 손에 피가 가득함이라
(이사야 1:11~15)
과거에는 나도 제자였다고 말하지 말라. 지금
여전히 제자의 삶을 살아가지 않는다면 과거의
당신은 제자가 아닌 허다한 무리에 속한
사람이었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단순한
동의가 아니라, 그분의 말씀 안에 머물고
그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가는 지속적인 삶의
자세임을 기억해야 한다. 진짜 믿음과 가짜
믿음은 나중에 다 드러나고 걸러지게 되어있다.
본문으로 돌아와서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이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으로서 남의 종이 되었던 적이
없다고 말하며 진리가 자신들을 자유롭게 한다는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또 본문에서는 아니지만 누군가는 예수님을
로마로부터 정치적 자유나 상황의 자유을
이끌어 줄 사람으로 보기도 했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이 말씀하신 자유는 자신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로 인해 주어질 죄사함
곧, 영적인 죽음으로부터의 자유이다.
17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너희가 본래 죄의
종이더니 너희에게 전하여 준 바 교훈의 본을
마음으로 순종하여
18 죄로부터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
(로마서 6:17~18)
1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2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로마서 8:1~2)
1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갈라디아서 5:1)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주장하지만, 예수님은 너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면 아브라함이 행한 일들을 할 것이라고
말씀하시며 그 주장을 반박하신다. 혈통이
아니라 믿음과 행함이 진짜 아브라함의 자손을
결정한다. 표면적 유대인이 참 유대인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는 이면적 유대인이 참 유대인이다.
26 그런즉 무할례자가 율법의 규례를 지키면
그 무할례를 할례와 같이 여길 것이 아니냐
27 또한 본래 무할례자가 율법을 온전히 지키면
율법 조문과 할례를 가지고 율법을 범하는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겠느냐
28 무릇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표면적 육신의 할례가 할례가 아니니라
29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지니 영에 있고 율법 조문에 있지
아니한 것이라 그 칭찬이 사람에게서가 아니요
다만 하나님에게서니라
(로마서 2:26~29)
6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을 그에게
의로 정하셨다 함과 같으니라
7 그런즉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인 줄 알지어다
8 또 하나님이 이방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로
정하실 것을 성경이 미리 알고 먼저 아브라함에게
복음을 전하되 모든 이방인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하였느니라
9 그러므로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는 믿음이 있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느니라
(갈라디아서 3:6~9)
혈통과 전통에만 기대어 스스로를 하나님의
백성이라 여기는 태도는 예수님에 대한 도전이며
참된 아브라함의 자손은 아브라함처럼 믿음으로
하나님을 신뢰하고, 경외하며 그 믿음에 합당한
행위를 하는 사람이다.
1 그 일 후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그를 부르시되 아브라함아 하시니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2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일러 준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3 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두 종과 그의 아들 이삭을 데리고
번제에 쓸 나무를 쪼개어 가지고 떠나 하나님이
자기에게 일러 주신 곳으로 가더니
.
.
9 하나님이 그에게 일러 주신 곳에 이른지라
이에 아브라함이 그 곳에 제단을 쌓고 나무를
벌여 놓고 그의 아들 이삭을 결박하여 제단 나무
위에 놓고
10 손을 내밀어 칼을 잡고 그 아들을 잡으려 하니
11 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그를 불러
이르시되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하시는지라
아브라함이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매
12 사자가 이르시되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그에게 아무 일도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창세기 22:1~3, 9~12)
본문 이후에 나오긴 하지만 예수님은 자신의
혈통에 기대는 이들에게 너희 아비는 마귀라고
말씀하신다. 예수님은 이 말씀을 통해 오늘 우리는
누구를 아버지로 두고 사는가?라는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는 자는 달라야
한다. 더 이상 마귀의 아들 노릇을 해서는 안 된다.
예수님은 산상수훈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화평케 하는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이라
(마태복음 5:9)
유대인들은 스스로를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자처했지만 아버지의 성품은 보이지 않았다.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것은 분명히
하나님의 은혜이나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면서
아버지의 모든 말씀을 경청하느냐 아니면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며 내가 듣기에
불편하지 않은 내용만 취사선택&편식하느냐?
만약 마지막까지 후자의 신앙에서 변화가 없다면
하나님 앞에 섰을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떻게
평가하시겠는가?
우리는 세상 가운데 하나님의 성품을 닮은 모습을
보여야 한다. 갈등을 아예 만들지 말라는 소리가
아니다. 진리에 직결되는 문제가 발생했을 때
(죄를 죄로 여기지 않는 문제 등) 그것을 바로잡고
공의롭게 해결하는 것이 화평이지 갈등으로 인한
여파나 결과가 두려워 그것이 필요한 갈등인지
아닌지 고민하지도 않고 일단 덮어두고 자유를
제한하고 입을 다물게하는 것이 화평이 아니다.
삶 가운데 하나님의 말씀을 더 사랑하고
살아계시고 실재하시는 하나님이 우리 삶에
실제가 되도록 믿음의 자리로 뛰어들자. 약은
쓰지만 몸이 건강해지기 위해서 필요할 때가
있듯이 평소에 하나님의 말씀을 내가 듣기에
불편하지 않은 것만 취사선택&편식하지 말고
때로는 불편할 수 있는 쓰디 쓴 그 말씀 앞에
서서 회개하자. 먼저는 나부터 그러한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소망한다.
7 자녀들아 아무도 너희를 미혹하지 못하게 하라
의를 행하는 자는 그의 의로우심과 같이 의롭고
8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
9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함이요 그도
범죄하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났음이라
10 이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과 마귀의 자녀들이
드러나나니 무릇 의를 행하지 아니하는 자나
또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니라
11 우리는 서로 사랑할지니 이는 너희가 처음부터
들은 소식이라
12 가인 같이 하지 말라 그는 악한 자에게 속하여
그 아우를 죽였으니 어떤 이유로 죽였느냐 자기의
행위는 악하고 그의 아우의 행위는 의로움이라
(요한일서 3:7~12)
1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2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3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4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5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6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7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라
(에베소서 2:1~7)
4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에 나게
하신 것은
5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6 너희가 아들이므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7 그러므로 네가 이 후로는 종이 아니요
아들이니 아들이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유업을 받을 자니라
8 그러나 너희가 그 때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여
본질상 하나님이 아닌 자들에게 종 노릇 하였더니
9 이제는 너희가 하나님을 알 뿐 아니라 더욱이
하나님이 아신 바 되었거늘 어찌하여 다시 약하고
천박한 초등학문으로 돌아가서 다시 그들에게
종 노릇 하려 하느냐
(갈라디아서 4:4~9)
핵심 구절 ✝️
그러므로 예수께서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으로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그들이 대답하되 우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남의 종이 된 적이 없거늘 어찌하여
우리가 자유롭게 되리라 하느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 종은 영원히
집에 거하지 못하되 아들은 영원히 거하나니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로우리라 나도 너희가 아브라함의
자손인 줄 아노라 그러나 내 말이 너희 안에 있을
곳이 없으므로 나를 죽이려 하는도다 나는
내 아버지에게서 본 것을 말하고 너희는 너희
아비에게서 들은 것을 행하느니라 / 너희는
너희 아비가 행한 일들을 하는도다 대답하되
우리가 음란한 데서 나지 아니하였고 아버지는
한 분뿐이시니 곧 하나님이시로다
(요한복음 8:31~38, 41)
기도제목 🙏
1. 우리가 평소에 찬양으로 쉽게 고백하는
그 삶이 우리의 실제가 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을 위해 살겠다고, 하나님만이 나의
소망이라고는 고백했지만 막상 삶에서는 나를
위해 살아가고 다른 것을 소망하는 고집불통이
되지 않기를 원하오니 나를 끊임없이 진리의
말씀으로 가르치시고 나를 자유케 하소서.
2. 삶 가운데 하나님의 말씀을 더 사랑하길
원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별의 별 이유를 대며
말씀을 보고 듣는 자리를 회피하기도 합니다.
또 보고 듣기는 해도 내가 보고 듣기에 불편하지
않은 것만 취사선택&편식을 하기도 합니다.
때로는 불편할 수 있는 쓰디 쓴 그 말씀을
회피하지 않고 그 자리에 서서 회개하게 하소서.
묵상 찬양 🎵
https://youtu.be/R5Pfk_VjuOc?si=jEsCs8a6Y3du69j3
https://youtu.be/78UxKcXf9FM?si=oMEMU4D-zsxEprY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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